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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에는 별별버거
김경은
햄버거가 당긴다는 건, 숙취가 심하게 올라왔다는 증거이다. 나는 지금 침대에 널브러진 채, 간신히 손가락만 까딱이며 배달 앱을 살피고 있다. 프랜차이즈부터 수제 버거까지 햄버거 시장은 넓었고 메뉴도 가지가지였다. 제아무리 다른 가게의 같은 메뉴여도 패티의 종류와 두께, 튀긴 정도와 소스의 묽기 등에 따라, 각각의 버거는 저마다의 우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하나의 버거를 고르더라도 신중할 수밖에. 나는 익숙한 메뉴를 살피며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이건 뭐지? 별별버거?”
배달 앱의 VVIP인 내게도 낯선 메뉴가 있을 줄이야. 최근 몇 달간 본 적이 없는 가게였다. 나는 버거의 상세 정보를 눌렀다. 버거 사진은 물음표 아이콘으로 대체되어 있었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일 것입니다’라는 설명만 덧붙여져 있었다.
“장난 똥 때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게 리뷰를 눌렀다. 전체 리뷰 갯수는 고작 3개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 사람 다 만족스럽다는 후기를 남겼다.
—인생 버거! 사장님, 번창하세요♥
—내 버거 인생은 별별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반신반의하며 시켰는데 존맛입니다.
뭐지? 알바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조차 리뷰에 버거 사진을 올리지 않았으니, 의심의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가게 통계를 눌러 최근 주문 수를 확인해보았다. 놀랍게도 주문 수가 999개 이상인 잘나가는 맛집이었다.
“도대체 왜?”
충분히 조작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가게에서, 리뷰가 고작 3개 달려 있을 리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결제 버튼을 누르자, 곧 배달 알림 문자가 왔다.
—5분 뒤 도착!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5분이라고? 55분을 잘못 보낸 게 아니고? 나는 도리질 치며 화장실로 들어가 눈곱을 뗐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순간 ‘띵동’ 하고 벨이 울렸다.
“1분도 안 지났는데!”
나는 변기에 앉으려고 내린 바지를 서둘러 올려 입고 초인종을 살폈다. 누군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별별버거입니다.”
나는 네에, 대답하며 문을 벌컥 열었다. 순간 심장이 멎어버릴 뻔했다. 눈앞에 선 사람이 낯익어서였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내 손에 버거가 담긴 봉투를 쥐여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확신에 차, 그녀에게 꽥 소리쳤다.
“이미도!”
그녀가 뒤돌아보더니 나를 보고 씩 웃었다. 그래, 이미도. 그건 바로 내 이름이었다.
이미도는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버렸다. 나도 내려간 그녀를 굳이 붙잡을 생각이 없었다. 귀찮기도 했거니와, 오래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니어서였다. 하필이면 와도 왜 그때 그 시절이지. 배달 온 이미도는 10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내 모습 그대로였다. 이왕이면, 3년 전 리즈 시절로 나타날 것이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3년 전의 나는 남자에 미쳐서 미친 듯이 굶어가며 다이어트를 했던 것이다.
“젠장. 별일이 다 있어서 별별버거냐, 뭐냐.”
시공간을 초월한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니지, 내가 아직 술이 덜 깬 걸 수도. 나는 손끝까지 퍼진 숙취로 미간을 찌푸린 채 봉투를 열었다.
의문의 버거는 생각보다, 아니, 생각 외로 아주 멀쩡하고 평범한, 햄버거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 버거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이 염병할 사기꾼들이! 버거의 번을 들어 올려 내용물도 살펴보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이렇게 평범할 수가 없었다. 상상 그 이하일 거라는 설명은 페이크가 아니라 아주 정직한 마케팅이었던 것이다. 딸려 온 감자튀김과 콜라에 뭐라도 탔나 싶어 주의 깊게 살폈지만, 다른 건 없었다.
“장사 한번 별나게 하시네.”
아무리 황당해도 버거를 갖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달비 3천 원을 들여 주문한 도합 만 8천 5백 원짜리 고급 수제 버거였으니까. 백수라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가격이었지만, 평소 먹는 술값을 생각하면 숙취에도 돈을 들이는 게 공평한 것 아닌가, 하는 난데없는 계산력이 발동했다. 알 게 뭐람. 어차피 나간 돈. 나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거를 입에 넣었다.
“말도 안 돼! 맛있잖아!”
버거를 씹는 내내 입에서 쌍욕이 멈추지 않았다. 이건 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언어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궁극의 맛이었다. 배달 앱 VVIP 인생 5년 동안, 아니 30년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버거를 먹어본 적이 있던가?
“왜 없겠어. 아예 없진 않을걸?”
나는 컥, 하고 먹던 걸 뱉었다. 어느새 눈앞에 과거의 나, 이미도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터질 듯 꽉 끼는 교복을 입고서. 심지어 그때의 나처럼 치마 지퍼를 반쯤 풀어놓은 채로.
“네가 왜 거기에……”
나는 체할 것 같아 주먹으로 가슴을 퍽퍽 쳤다. 이미도는 상 위에 있던 콜라를 내게 건넸다. 나는 빨대로 콜라를 쭉 빨아 마시고 꺼억 트림했다.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네가 날 불렀잖아.”
이미도가 팔짱 낀 채 나를 보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미도는 지겨워 죽겠다는 듯 말했다.
“너 배달 시켜 먹을 때마다 내 생각 했어, 안 했어?”
나는 멈칫하다 이내 빽 소리쳤다.
“내가 왜 네 생각을 해! 뭐 좋은 기억이라고!”
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미도는 “얼씨구” 하더니 엄지와 중지를 딱, 소리 나게 부딪쳤다. 그 순간 좁은 자취방 안에 이미도의 분신들이 가득 나타났다, 사라졌다. 순식간이었지만 그 애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울거나 화를 내고 있었다.
“내 말이 틀려?”
과거의 이미도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너 잘났다.”
나는 이를 갈았다. 꼴도 보기 싫은 과거의 얼굴을 왕창 보고 나니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내가 이마를 짚자 이미도가 이죽거렸다.
“그건 숙취 때문이고.”
나는 콧김을 뿜었다.
“그래! 해장하려고 비싼 돈 처들여서 햄버거 시켰다. 어쩔래?”
머릿속으로 과거의 나날이 빠르게 스쳐갔다. 외롭고 서럽고 비참해 병나발을 불던 밤들. 그 밤 끝에 변기통을 붙잡고 구토하느라 머리카락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음식물 찌꺼기의 역겨운 냄새. 다음 날 온몸을 짓이기는 숙취의 기나긴 뒤끝까지.
이미도는 나를 빤히 보고는 말했다.
“싸우자고 나타난 건 아니야.”
“그럼 뭔데?”
이미도는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 앉았다. 통통한 볼살 위로 하얀 솜털이 반짝였다.
“이제 그만 나를 놓아달라고, 부탁하러 온 거야.”
이미도는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정한 숙취 해소법은 뭐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술똥이다.”
그러자 이미도는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반쯤 남은 버거의 패티 사이로 집게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에이 씨! 더럽게!”
내가 질색하자 이미도는 자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를 먹어.”
나는 가만히 그 애를 보았다.
“그리고 소화시켜. 내가 네 일부라는 걸 이제 그만 받아들이라고.”
이미도가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때의 나도 너야.”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 물었다. 그런 나를 보던 이미도의 몸이 투명해졌다. 이미도는 어느새 손가락을 타고 햄버거 속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남은 버거를 보니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 몸을, 그러니까 나를 끔찍이도 미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도가 첨가된 버거 반쪽을 들었다. 아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버거였지만, 과거의 내가 들어 있다는 건 뭐가 달라도 다른 거였다. 어느새 입에 침이 고였다. 나는 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이 버거가 입에서 으깨어져 사라진다 해도, 여전히 나는 그 시절의 나를,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버거는 소화되어 내 일부가 될 것이고, 나는 술똥을 싸 이 지겨운 숙취에서 벗어날 거라는 사실이다. 버거의 마지막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앱에 올릴 한 줄 평을 떠올렸다.
‘상상 그 이하의 맛도, 생각보다 괜찮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