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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하고 끈끈하고 미끈한 이야기
고수경
끈적이와 끈끈이에게 동생이 생겼다.
엊그제 엄마와 아빠가 웬 바구니를 가지고 들어왔다. 엄마는 이 안에 있는 게 너희의 동생이라고 말했다. 끈적이와 끈끈이는 바구니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말했다.
“얘가요?”
“우리 동생이라고요?”
“그렇단다.”
아빠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엄마가 아빠를 나무라듯 툭 쳤다. 엄마도 아빠처럼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짐짓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애들아, 인사해야지. 너희 동생 미끈이야.”
미끈이는 끈끈이와 달랐다. 끈적이와도 다르고, 엄마와도, 아빠와도 공통점이 하나도 없었다. 냉장고나 거울처럼 반들반들하고 민숭민숭했다. 아주 작은 날파리 하나도 먹지 못하고 재와 먼지 같은 것만 먹었다. 끈끈이는 미끈이가 이상하게만 보였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파리꼬치도 못 먹는 아이가 어떻게 우리 가족이란 말이야? 끈적이는 끈끈이가 태어났을 때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았다고 들었다. 끈끈이는 이런 아이가 동생이라는 걸 어떤 친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도 미끈이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들도 이런 아이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 날마다 여기저기 상담을 받으러 다니며 어떻게 키울지를 고민했다. 끈끈이는 자다가 물을 마시러 나갔을 때 안방의 작은 대화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키워도 되는 걸까?”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안 키우면 누가 키워?” “아니, 내 말은.” 끈끈이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물도 마시지 않고 방으로 돌아와버렸다.
끈끈이는 다음 날 엄마와 아빠가 미끈이를 잘 돌봐야 한다고 했을 때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끈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엄마와 아빠를 더 힘들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끈적이가 미끈이를 안으려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놓칠 뻔한 뒤로 끈적이와 끈끈이는 미끈이를 만지지도 못했다. 우는 미끈이를 안아서 달래주거나 먼지를 먹여줄 수 있는 건 엄마와 아빠뿐이었고, 끈적이와 끈끈이는 방바닥을 쓸며 먼지나 모아야 했다.
계속 방바닥을 쓸다 보니 무릎도 아프고 재채기도 나서, 끈끈이는 한 주먹도 모으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리고 여전히 먼지를 모으고 있는 끈적이에게 물었다.
“언니, 너무 짜증나지 않아? 엄마 아빠는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고. 미끈이만 보고.”
“너 태어났을 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끈적이가 웃으면서 말하자 끈끈이는 입을 삐죽였다.
“나랑은 다르지. 미끈이는…… 우리와 다르니까.”
“그렇긴 한데. 다르다고 해서 우리 가족이 아닌 건 아니잖아.”
끈적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먼지를 다 모았다고 엄마에게 갔다. 혼자 남겨진 끈끈이는 애써 모은 먼지를 도로 털어버렸다. 언니는 어떻게 나도 그랬던 것처럼 말할 수 있지? 나는 위험하게 손에서 미끄러지지도 않고, 먼지를 모으게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미끈이 같지 않은, 평범한 아이였는데. 발을 굴러 바닥을 걷어차자 방금 버린 먼지가 끈끈이에게 돌아와 달라붙었다.
끈끈이의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곤충 채집 시험 날이 다가왔다. 평소 성적이 좋지 않았던 끈끈이는 이번에는 열심히 준비했다. 언니만큼은 잘할 수 없어도 요즘 미끈이만 돌보는 엄마 아빠의 관심을 끌어오고 싶었다. 시험 당일에 끈끈이는 접착제도 골고루 잘 바르고 벌레들이 좋아하는 냄새도 다양하게 풍겼다. 그러나 급한 벼락치기로는 원래부터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들을 이길 수 없었는지 결과는 4등이었다. 1등부터 3등까지는 초강력 접착제와 곤충을 유인하는 꽃다발, 파리꼬치를 해먹을 수 있는 각종 파리 모둠을 받았지만, 끈끈이가 받은 것은 4등부터 10등에게 다 주는 작은 마그넷이었다. 끈적이는 접착제와 꽃을 종종 받아와 엄마 아빠에게 칭찬을 듣곤 했는데 마그넷은 아무 쓸모도 없었다.
“끈끈이, 오늘 시험이었지? 어땠어?”
저녁 식사 시간에 엄마가 물었다. 끈끈이는 고개를 숙이며 4등을 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엄마와 아빠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4등이나 했구나! 5등 안에 든 게 처음이지? 정말 잘했다!”
“그러게요. 끈끈이가 열심히 했나 봐요.”
언니도 끈끈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해주었다. 끈끈이는 용기가 나서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마그넷을 꺼냈다.
“이걸 받았어요.”
식구들이 고개를 기울여 마그넷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끈끈이는 다시 창피해졌다. 마그넷은 밋밋한 하늘색 바탕에 '끈끈이'라고 쓰여 있는 게 다였다.
“예쁘구나. 어디에 붙이면 좋을까?”
엄마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끈끈이는 식탁에서 일어나 마그넷을 냉장고에 붙여보았다. 그러자 끈끈이의 이름이 냉장고 안의 식자재 중 하나인 것처럼 보였다. 마그넷을 떼서 현관으로 걸어가 현관문에 붙였다. 신발이 신발장 안에 모두 정리되어 있어 휑한 현관에 끈끈이의 이름만 덩그러니 있었다. 가족들이 다 같이 사는 집인데 끈끈이 혼자 사는 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끈끈이는 다시 마그넷을 떼서 어디에 붙일지 고민했다. 욕실 타일 벽? 옷장 옆 거울?
“끈끈아, 아무 데나 붙여도 돼. 원하는 곳에 붙여.”
고민하며 서 있는 끈끈이에게 아빠가 다정하게 말했다. 끈끈이는 마그넷을 든 채 멈춰 섰다. 어차피 중요한 게 아니니 아무 데나 붙여도 상관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아빠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끈끈이가 이 마그넷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 데나'라는 말만 귀에 꽂혔다. 언니가 받아온 것들은 항상 정해진 자리가 있었다. 접착제는 튼튼한 금고에 보관했고 급할 때는 빨리 꺼내어 쓸 수 있도록 일부는 거실의 서랍장에 넣어두었다. 관상용 꽃은 식탁 위 화병에 꽂혀 있었고 벌레를 부르는 용도로 쓰는 꽃은 베란다에 널려 있었다. 끈끈이의 마그넷은 예쁘지도 않고 벌레를 모으지도 못했다. 그냥 붙여둘 수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마그넷을 마땅히 붙일 곳은 없었다.
“그냥 제가 가지고 있을게요.”
끈끈이는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며 마그넷을 주머니에 넣었다. 의아해하는 식구들을 남기고 식사도 마치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식탁 옆 바구니에 누워 있었던 미끈이가 울었다. 배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우는 소리가 아니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쓰고 팔을 한껏 휘둘렀다.
“미끈아! 왜 그래?”
엄마가 안아서 달래주는데도 미끈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팔을 더 세게 뻗었다. 식구들은 모두 미끈이의 팔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끈끈이가 서 있었다.
“왜? 왜 나한테 그러지?”
끈끈이는 당황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미끈이는 그제야 울음을 그치며 끈끈이의 주머니를 가리켰다.
“이거?”
끈끈이가 주머니에서 마그넷을 꺼내 보였다. 미끈이가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그넷을 조심히 건넸더니, 미끈이가 손으로 받기도 전에 마그넷이 저절로 움직여서 미끈이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자 미끈이가 까르르 웃었다. 미끈이가 울어서 놀랐던 식구들은 한 번 더 놀랐다. 미끈이는 끈적이와 끈끈이에 비해 잘 울지도 않았는데 웃는 일은 더더욱 드물었기 때문이다.
“우리 미끈이, 끈끈이 언니 자석이 좋아?”
식구들이 반색하며 미끈이를 따라서 웃었다. 그 웃음소리 사이에서 끈끈이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 마그넷을 혼자 가지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특히 엄마와 아빠가 가장 자주 들여다보는 미끈이가 마그넷을 가진다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그러나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아 목을 가다듬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얘는 미끈이인데, 끈끈이라는 마그넷을 붙이면 어떡해?”
“음, 미끈이 이름에도 끈 자가 들어가잖아. 끈적이 이름에도 들어가고. 그러니까 끈 자가 두 번이나 들어가는 끈끈이 이름이 세 자매 중심 같은 거지.”
엄마가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미끈이는 끈끈이와 같은 점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끈적이와도, 끈끈이와도 한 글자씩을 공유하고 있었다. 끈끈이는 세 자매의 중간에 있었고, 세 자매를 이어주는 글자를 유일하게 두 개나 가졌다. 끈끈이는 엄마가 안고 있는 미끈이에게 뺨을 딱 붙여서 비볐다.
“어떠냐, 미끈이! 이 끈끈이 언니 얼굴이 끈끈하지?”
“와, 끈끈이가 이름값을 하네!”
아빠가 호탕하게 웃고 엄마와 끈적이도 웃었다. 미끈이는 끈끈이의 마그넷을 몸 여기저기에 붙여보고 있었다. 끈끈이는 미끈이를 가만히 보았다. 여전히 이름 외에는 끈끈이와 너무 다른 아이였다. 그러나 이렇게나 다르기 때문에, 미끈이는 끈끈이의 마그넷을 붙일 수 있었다. 다르다고 해서 가족이 아닌 건 아니라는 끈적이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의 어깨 너머로 끈적이를 보자 끈적이가 가볍게 윙크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