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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문지혁
남자는 선착장을 향해 걸었다. 끝없이 이어지던 주황색 지붕과 회색 벽돌들 사이를 빠져나오자 따가운 이국의 햇빛이 쏟아졌다. 남자는 선글라스를 가지고 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오래전 신혼여행 때 공항 면세점에서 샀던, 금빛 장식이 촌스러운 그의 커다란 선글라스는 버려진 짐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거였다.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걸음을 재촉했다.
부두에는 낡은 모터보트 몇 대가 묶여 있었다. 부리가 검은 갈매기들이 파도처럼 바다와 육지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녔다. 남자는 그중 사람이 타고 있는 보트 앞에 멈춰 섰다. 보트 옆에는 ‘kraken’이라는 글씨가 초록색으로 적혀 있었다.
“피시 아일랜드.”
남자는 큰 소리로 말했다. 보트 위에 앉아있던 사내가 뒤를 돌아보더니 눈이 부신 듯 인상을 썼다.
“피시 아일랜드. 아이 원투 고.”
남자는 보트로 가까이 다가가서 한 번 더 말했다. 어디선가 옅은 비린내가 바람에 실려왔다.
아이가 죽은 것은 넉 달 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주치던 택배 트럭이었다. 신데렐라처럼 12시가 되기 전에 주문만 하면 어느샌가 새벽녘에 물건을 문 앞에 가져다놓곤 하던 마법의 차량. 남자의 딸은 그 차에 치여 죽었다. 트럭 기사는 세 아이의 아버지였고 그날은 아파서 일을 나가지 못했다. 대신 운전을 한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그에게 할당된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아내는 머리를 올리고 모자를 쓰고 등에 로켓이 그려진 남편의 점퍼를 입었다. 그리고 아파트 입구에서 아이를 쳤다.
남자는 처음에 합의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를 살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대신 그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으려 했다. 죄를 지었으면 감옥에 가야지. 합의하지 않으면 기사의 아내는 감옥에 가야 했고 대리 배달이 알려진 기사는 이미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들이 제시한 합의금은 3천만 원이었다. 남자는 딸의 목숨값으로 3천만 원을 받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3억 원을 제시했더라도 달라질 건 없었다. 부부는 그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지만 그는 끝까지 합의해주지 않았다.
별거 중이던 아내는 아이의 장례를 함께 치른 뒤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이제 당신과 헤어질 수 없는 마지막 이유가 사라졌네. 아내는 멍한 눈빛으로 말했다. 남자는 뭔가 항변하려 했지만 말없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 아이를 화장한 화장터 주차장에서 둘은 각자의 차로 헤어졌다. 아내가 먼저 떠났고 남자는 그녀의 흰색 SUV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핸들에 머리를 기댄 채 조금 울었다.
아이의 방을 정리하는 것은 그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이자 고통이었다. 처음에는 아예 이사를 가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집을 알아보고 짐을 정리하고 일상의 공간을 새로 꾸리는 것이 그에게는 더 버겁게 느껴졌다. 죽은 아이의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누구에게 함부로 주거나 버릴 수도 없었다.
『해를 찾아서』라는 책을 발견한 것은 한 달 전이었다. 아이가 소유했던 백여 권의 책 속에서 그 책이 특별했던 이유는 단 하나, 표지에 언젠가 들어본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그림 민우진.
난 우진이랑 결혼할 거야.
단것을 너무 많이 먹었거나, 새로 산 원피스를 입었거나,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을 기다릴 때면 아이는 뜬금없이 말하곤 했다. 우진이? 걔가 누군데? 남자가 말하면 아내는 웃으며 핀잔을 주곤 했다. 세린이 유치원 베프잖아. 맨날 듣고도 몰라? 민우진은 지인의 이름조차도 곧잘 잊어버리곤 하는 남자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딸의 친구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딸이 결혼하겠다고 말할 때마다 반사적으로 그 이름을 떠올리곤 했다.
이 책이 왜 여기에 있을까. 남자는 알 수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이젠 애들까지 팔아서 연락하냐. 비겁하게.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머리가 아파져 수면제를 삼킨 남자는 거실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한낮의 햇빛이 거실을 반으로 갈라놓고 있었다. 그제야 남자는 미래의 사위가 될 수도 있었던 아이가 쓰고 그린 책을 펼쳤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옛날 옛날에 물고기 모양의 섬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었다.”
물고기 모양의 섬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2주 전이었다. 그에게는 이제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아이도, 아내도, 합의를 요구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조금 더 잃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고, 집을 급매로 시세보다 조금 낮게 팔았다. 옷을 버리고 가구를 처분하고 머리카락을 밀었다. 그게 무엇이든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모든 것을 내다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하고도 버리지 못한 것이 우진의 책이었다. 『해를 찾아서』. 이상하게도 그 책은 버려지지가 않았다.
하트 모양의 침대가 놓인 번화가 구석의 모텔에서 그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물고기 모양의 섬을 찾아냈다. 크로아티아 서쪽의 아드리아해 북쪽 끝에 있는 이스트라반도에 가면 붕어빵을 꼭 닮은 섬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섬의 이름은 가즈Gaz였다. 가즈, 가즈, 가즈…… 그는 섬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물고기를 닮은 섬 사진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했다. 그러고 나서야 그 컴퓨터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황급히 바탕화면에 저장된 사진을 지웠다.
크로아티아행 비행기 티켓을 편도로 예약하고 나서 그는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그날 밤 그는 비행기가 엔진 고장을 일으켜 바다에 추락하는 꿈을 꾸었다.
남자가 건넨 백 달러 지폐 두 장에 사내는 흔쾌히 시동을 걸었다. 모터보트는 더러웠고 작은 파도에도 몹시 흔들렸다. 남자는 서울을 떠난 뒤 스무 시간 넘게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섬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였지만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부두에서부터 따라온 비린내는 그의 코끝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속이 메스꺼워졌고 곧 구역질이 시작됐다. 보트 뒤쪽에서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남자가 알아듣지 못하자 사내는 바다에 토하는 시늉을 했다. 남자는 초록색 바다 위에 거품이 섞인 하얀 점액질을 쏟아냈다. 비린내 대신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침내 구역질을 해도 아무것도 바다를 덮지 못하게 되었을 무렵 보트가 섬에 도착했다.
“원 아워. 오케이?”
보트에서 내리는 남자에게 사내는 손가락을 펴서 1자를 만들어 보였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섬으로 들어갔다.
섬은 황량한 벌판과 듬성듬성 자라난 나무들이 전부였다. 버려진 것 같은 돌덩이들 말고는 제대로 된 건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핸드폰에 저장해둔 섬의 위성사진을 꺼내보았다. 섬은 분명 물고기 모양이었지만 섬 안에서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천천히 원을 그리며 섬을 한 바퀴 돌았다. 허기가 졌고 다리가 아팠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사이 해가 조금씩 저물어 초록색 바다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내가 남자를 찾기 시작했을 때 남자는 섬의 한가운데, 숲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나무들 밑에 앉아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쳐 읽는 중이었다.
‘그곳에는 해가 있었다. 해는 팔짱을 끼고 있었고 많이 삐친 것 같았다. 물고기는 너무 눈이 부셔서 일단 선글라스를 썼다. “왜 왔어? 내가 여기에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멀리서 남자를 부르는 사내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짜증스럽게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는 일어서거나 손을 흔들거나 큰 소리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낮은 목소리로 얼굴도 모르는 아이가 쓴 문장을 천천히 읽을 뿐이었다.
‘해는 조금씩 하늘 위로 떠올라 물고기 섬을 비췄다. 예전보다 더 밝고 따뜻한 빛이었다. 이제 물고기들은 미역을 다시 먹을 수 있었고 다시 등교를 하거나 출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햇빛을 쬐지 못해 생겼던 병도 없어졌다.’
남자를 찾지 못한 사내가 보트에 시동을 걸어 뭍으로 돌아가고, 해가 완전히 저물어 어둠이 찾아온 뒤에도 남자는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배터리 부족으로 핸드폰 플래시가 꺼지자 더 이상 글씨가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는 계속해서 읽었다. 들고 있는 검은 책 속에 그가 세린에게 하고 싶었던 말과, 우진에게 궁금했던 질문과, 아내에게 하고 싶었던 항변이 모두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남자는 계속해서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세린은 건강하고 씩씩한 어른이 되었으며, 아내는 재혼했고 세린과 우진은 정말로 결혼을 해서 그에게는 쌍둥이 손자 손녀가 생겼다. 바다 끝이 희미하게 밝아질 때까지 남자는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책장은 끝없이 넘어갔고 마지막 문장은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