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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친구 도시 친구

 

by 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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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레스트 홀」은 지수민 작가의 『숲 친구 도시 친구』와 매칭된 페어링 픽션으로, 내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기도 하다. 원작에서 숲은 안락한 공간, 도시는 위험한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 글에서는 숲(웅덩이)과 도시(교통사고)가 모두 위험한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 어린 존재들이 낯선 세계를 모험하는 모티브는 그대로 가져왔으나, 원작에서는 두 친구가 화합하는 반면 이 글에서는 교감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웅덩이, 포레스트 홀의 기억은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웰스의 「벽문」이나 쓰네카와 고타로의 『야시』처럼 어려서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고독해지는 개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애초에 고독은 그렇게 생성되는 게 아닐까. 

​이유리

 

포레스트 홀

 

이유리 

   12층 아저씨가 죽었다. 어젯밤에. 아니 오늘 새벽이라 했다. 
   아저씨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고속도로에서 죽었다. 지방에 땅을 사려는 친구가 부동산을 잘 보는 아저씨를 데리고 간 거였다. 갑자기 폭우가 내려 차가 미끄러졌는데 하필이면 대형 화물차를 들이받았다고.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사체 수습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소식을 들은 12층 아주머니는 까무러쳤다고, 토끼 같은 자식들을 두고 어찌 그리 허망하게 가느냐며. 엄마는 자기 일처럼 통탄했다. 한 손에는 맥주 캔, 다른 한 손에는 오징어가 들려 있었고. 옆에는 아빠가 앉아 있었다. 일명 맥주 타임이었다.

 

   나는 자는 척을 하며 그 모두를 엿듣고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 하루의 피곤과 가벼운 취기를 머금고 남실대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나는 좋아했다. 어른들의 세계를 훔쳐 듣는 짜릿함, 그 세계의 언어와 내용을 벌써 이해한다는 자부심은 더더욱 달콤했고.
   한마디로 나는 쓸데없이 조숙한 어린이였다. 또래와 어울려 노는 건 시시하게 여기면서, 책은 질리지도 않고 읽어댔다. 독서도 내게는 엿보는 행위였다. 펼쳐서, 틈으로, 보는 것. 벌어진, 틈으로, 듣는 것. 내게는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내가 뭐든 다 알고, 뭐든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술 더 떠 알아서는 안 되는 것, 굳이 알 필요 없는 것까지 모두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때마침 ‘죽음’을 막 배운 참이었다.

   일주일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당엘 갔다. 예수님에겐 관심이 없었는데 미사포에는 관심이 많았다. 그거 한번 써보겠다고 엄마를 졸라 동네 성당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미사포 말고는 재미있는 게 없었다. 성당 안은 예쁘게 꾸며져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조숙했지만 나는 어린이였다. 숭고함이 난제처럼, 엄숙함이 체벌처럼 느껴지는 나이였다. 얼른 집에 가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싶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성당 아저씨가 책 한 권을 쥐여주었다. 성당에서 만드는 어린이 잡지였다. 책이니까 일단 받아 왔다. 책은 많이 읽었어도 잡지는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자기 전에 한번 쓱 펼쳐봤는데 거기 죽음에 대한 만화가 실려 있었다. 만화는 무엇이든 좋았기에 기대를 품고 책장을 넘겼다. 만화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하느님을 믿는 자의 사후는 복될 것이나,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의 사후는 비참할 것이며 무엇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죽음에 대해 알고 있었다. 죽음은 동화에도 나오고 텔레비전에도 나오니까. 하지만 죽음 이후를 알려준 건 그 만화가 처음이었다. 만화에는 시체가 썩어가는 과정이 제법 자세히, 극사실주의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징그러운 것도 징그러운 거였지만 그건 너무 고독해 보였다. 관 속에서 홀로 삭아가는 몸뚱이, 결국 뼈와 머리카락만 남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인간.
   그걸 다 보고 나니 세상이 캄캄해져 있었다. 귀가 먹먹하고 목덜미가 서늘한데 심장만은 무섭게 쿵쾅거렸다. 무덤 속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내가 죽는 상상, 남이 죽는 상상이 정신을 사로잡았다. 언제든 죽음이 찾아올 것 같았고 어디든 죽음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불면증에 걸린 어린이가 되었다.

   불을 끄고 누우면 방 안에는 어둠과 함께 죽음이 차올랐다. 나는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생각과 사투를 벌이다 보면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어 있었다. 그럼 나는 얻어맞은 듯이 잤다. 죽음의 공포에 밤새 얻어맞다 잤다.
   12층 아저씨의 비명횡사로 나는 불면증에 걸린 어린이에서, 불면증에 걸렸는데 재수 없게 강박증까지 걸린 어린이로 발전했다. 불을 끄고 누우면 죽음과 함께 12층 아저씨가 생각났다. 나는 아저씨가 죽는 모습을, 죽어 썩어가는 모습을 차례로 상상했다. 그럼 숨이 막히고 몸이 뒤틀려서 가만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죽음을 예방하러 다녔다. 대문이 잠겼는지 확인하고, 가스가 잠겼는지 확인하고, 가족들이 자면서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하러 다녔다. 그러니까 대충 미쳐 있었다는 소리다. 정말이지 그즈음 내 세계에는 죽음밖에 없었다. 죽음에 몰린 건지, 홀린 건지 알 수 없는 시절이었다.

   이건 그 시절 숲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외가 친척들과 함께 숲에 갔다. 춥지 않은 계절이었다. 일행이 많아서 다 같이 걸을 때 뒤처지거나 잠시 이탈해도 들키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눈치껏 겉돌았다.
   나는 숲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숲에서는 보통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책을 많이 읽은 어린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숲에 가면 길을 잃거나 맹수를 만나거나, 아무튼 위험에 봉착할 확률이 높았다. 동생과 사촌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나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건 사실이라기보다는 비밀에 가까웠다. 조숙한 어린이는 그런 비밀들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우리는 고목 아래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 온 음식을 먹었다. 애들은 사이다를 마셨고 어른들은 반주를 마셨다. 어른들은 약간의 취기로도 왁자지껄 떠들었는데 난 그게 싫어 귀를 틀어막곤 했다. 한밤중에 엄마 아빠 이야기를 엿듣는 건 재밌었는데 그건 별로 재미가 없었다. 아마도 은밀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화기애애함 속에 숨겨진 알력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기도 했고.
   비비탄 총이 있어 빈 맥주 캔 맞히는 놀이를 했다. 동생도 사촌도 전부 남자였다. 나는 남자애들이 하는 건 뭐든지 했다. 그러면 용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밤에는 죽음에 그토록 시달리면서도 나는 용감한 어린이고 싶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제대로 조준해서 맥주 캔을 다 맞혔다. 맥주 캔을 맞힐 때마다 작은 새들이 날아올랐다. 지저귀는 새들도, 살랑대는 이파리도, 말 많은 어른들도 모두가 부산스러웠다.

   배가 부르고 술이 오르니 어른들은 하나둘 돗자리에 널브러졌다. 심심해져서 동생, 사촌과 숲을 산책하기로 했다. 우리는 정처 없이 숲을 쏘다녔다. 숲이 깊어질수록 나무들의 키가 커졌다. 나무들 사이의 간격도 좁아졌다. 점점 짙어지는 녹음에 시야가 물들었다.
   지나온 길이 흐릿해지고 갈 길이 아득하니 새삼 모험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촌과 동생의 표정도 상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떼진 않았다. 새소리, 물소리만 끼어드는 싱그러운 고요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가늘게 이어지던 외길이 갑자기 두 갈래로 갈라졌다. 오른쪽 길 너머에서 요란한 새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나타날 것 같은 느낌에 그 길을 택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갑자기 길이 끊기고 커다란 웅덩이가 나타났다. 우리는 걸음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다들 더 걷고 싶은 눈치는 아니었다. 물가에서 놀다 적당한 때에 돌아가기로 합의를 봤다.
   웅덩이는 꽤 깊은 것 같았다. 물가에서도 바닥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물수제비를 뜨며 놀았다. 그러다 그것도 이내 질려 돌을 멀리 차올리는 놀이를 했다. 사촌과 동생은 내가 질 거라며 약을 올렸고 나는 조숙한 어린이답지 못하게 오기가 생겨버렸다. 무엇이든 남자애들에겐 지고 싶지 않았다. 남자애들에게 지면 어린애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부터 어린애인데도 말이다.
   돌을 멀리 차올리려 무리해서 도약한 나머지, 나는 그만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동생과 사촌의 어! 하는 탄성이 귀에 스쳤으나 이내 물살에 가로막혔다. 발밑이 출렁이더니 온몸이 아래로 쑥 잡아당겨졌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숲에서 누가 수중 모험을 기대한단 말인가.
   웅덩이는 생각보다 더 깊었다. 나는 속수무책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신기하게도 겁을 집어먹거나 허둥대지는 않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순응하고 있었다. 나를 끌어 내리는 물살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의 징후에.
   온몸에 힘을 빼고 수면을 올려다보았다. 수면은 물빛과 하늘빛, 수시로 농도를 바꾸는 녹음으로 오색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만화경을 보는 듯했다. 그 영롱한 광경에 정신을 사로잡혔다.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을 땐 몹시 부산을 떨었으면서, 정작 죽을 위기에 놓이자 나는 미동도 없이 그 반짝임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래, 죽음은 반짝이고 있었다. 무섭게도.
   커다란 물고기가 맨다리를 스치는 감각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숨 못 쉬는 고통이 뒤늦게, 그러나 맹렬히 날 두드렸다. 본능적으로 뭍을 향해 헤엄쳤다. 수영을 잘해 천만다행이었다. 수영할 줄 몰랐다면 난 아마도 그 웅덩이에서 생을 이르게 마감했을 것이다. 조숙만 해보고 성숙은 못 해봤겠지.
   애써 물 밖으로 나왔는데 동생과 사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혼자였던 것처럼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별로 놀라지도 않고 물가에서 숨을 골랐다. 오히려 그들이 없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먼 곳에서 비명 같은 새소리가 들렸다. 나뭇잎들이 산란하는 물고기 떼처럼 일제히 몸을 떨었다. 녹음은 푸르름을 잃고 그림자로 전락했다. 모험에 실패한 자만이 가지는 풍경, 죽음에 근접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풍경이 거기 있었다. 사실 그건 풍경이라기보단 비밀에 가까웠다. 그늘진 영혼은 그런 비밀들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길을 반쯤 되돌아갔을 때 동생과 사촌이 어른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어른들은 홀딱 젖은 나를 보고 기겁했다. 그들은 내 몸 곳곳을 살피며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냐며, 걱정과 원망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나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건 사실이었고, 사실 나는 그저 침묵하고 싶었다. 내겐 침묵으로 지켜내고 싶은 감각과 경험이 있었다. 그건 발설되지 않고 지켜져야 했다. 나를 위해서든. 남을 위해서든. 비밀은 누군가를 나이 들게 하니까. 이해받지 못하는 비밀은 고아처럼 외로워지니까. 내 숲의 블랙홀에 깊숙이 묻어둘 수밖에.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목욕하고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다. 오래 젖어 있었던 탓에 몸이 으슬으슬했다. 오늘은 일찍 잘 수 있을까. 조심스레 눈을 감았다.
   여느 때처럼 죽음에 대한 생각이 몰려오려 하는데, 문득 감은 눈 위로 무언가가 반짝였다. 나는 곧바로 그것을 알아보았다. 그러자 웅덩이에 빠졌을 때 보았던, 오색 비단 같은 수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 무섭고 아름다운 물결에 흔들리며 잠을 청했다. 마치 검은 요람에 뉘어진 듯했다. 어린 잠과 함께 슬픈 예감이 찾아왔다. 정말로 영원히 눈 감게 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수면이, 그 고독한 반짝임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을 것 같다고.

   죽음은 그렇게 잠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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