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하스와 두엄마

 

by 조이현

2020_wce_pf12_조이현_하스와 두엄마.jpg

“ 현재의 엄마가 마냥 불만스러울 때,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 보는 건 누구나 한번쯤은 거쳤을 만한 유년 시절의 자연스러운 경험일 것이다. 조이현 작가가 쓴 『하스와 두 엄마』에 마음이 빼앗긴 것은 하스를 통해 어린 날의 나와 닮은 모습을 발견한 동시에, ‘하스의 엄마’에게도 감정 이입하게 되는 묘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무뚝뚝하고 직장일로 바쁜 하스의 진짜 엄마 이야기를 접하면서 가슴이 아렸다. 나는 요즘 좋은 직업인과 좋은 엄마는 일치하기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달아가는 중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좋은 작가인 동시에 좋은 엄마이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김유담

 

두엄마

 

김유담 

   고모는 친절하고 사근사근했다. 무뚝뚝한 엄마와는 대조되는 성격이었다. 엄마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은 회사에 다녀서 매일 바빴다. 고모는 피아노 레슨을 하는 선생님이라 엄마보다는 시간이 많고, 스케줄 조정이 자유로운 편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아이였는데, 엄마나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오지 못하면 고모가 대신해서 왔다. 나는 고모가 데리러 오는 날이면 너무 좋아서 폴짝폴짝 뛰곤 했다. 고모는 나에게 한없이 다정했다. 여름에는 베란다 풀장에 물을 가득 받아 물놀이를 하게 해줬고, 겨울에 눈이 오면 나와 같이 눈사람을 만들었다.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고모가 결혼했고 나는 그때 또 하나의 엄마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억울하고 분했다. 고모가 결혼하던 날 내가 화동 역할을 했는데, 꽃잎을 흩뿌리면서 행진을 하다가 엉엉 울고 말았다. 그때 이미 고모의 배 속에 사촌 동생 지후가 있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고모는 결혼 후 4개월 만에 남자 아기를 낳았다. 고모는 아이를 낳은 후에도 우리 집에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내게 피아노를 가르쳐주었다. 
   내가 열 살 되던 해 고모부가 직장을 옮기게 되면서 고모네 가족은 차로 두 시간 거리의 다른 도시로 이사 갔다. 고모는 연고가 없는 낯선 도시에서 피아노 레슨을 새롭게 시작하기 어려워했고, 이사 간 후로는 피아노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두고 전업주부가 됐다. 나 역시 고모가 떠난 후로 피아노를 그만뒀다. 엄마는 더 배우고 싶다면 다른 선생님을 알아봐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고모가 아니면 싫다고 했다. 나로서는 떼를 써본 것이었는데 엄마는 그러면 그만 배워도 되겠다며, 피아노 대신 배우고 싶은 다른 걸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고모가 내가 살던 도시를 떠난 지 6년이 지났고, 고모와는 집안 행사나 명절 때 잠깐씩 만나는 게 전부였지만 나는 여전히 고모를 좋아했다. 조카인 내게도 지극정성이었던 고모였으니 자신의 아들인 지후를 애지중지하는 마음은 유난할 정도였다. 내가 보기에 지후는 버릇이 없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많았는데 고모는 항상 지후를 ‘우리 천사’라고 부르며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엄마와 고모를 비교하게 되고, 우리 엄마가 너무 무정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됐다. 
   열여섯 살이나 되어서 엄마가 내 볼에 뽀뽀를 해주지 않는다는 게 서운할 리는 없고,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그렇다는 얘기다. 엄마는 언제나 바빴고, 피로한 얼굴이었다. 내게 다정다감할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직장인으로서도, 엄마로서도 책임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고모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해도 민폐가 되기 때문에 안 된다고 잘라 말하던 엄마가 먼저 열흘 정도 고모 집에서 지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외할머니가 큰 수술을 받게 되어서 엄마가 한 달간 휴직을 하고 외할머니 병간호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받느라 나 혼자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아빠도 당직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는 날이 많아서 밤에 혼자 자는 것도 걱정이 된다고 했다.  
   “너라도 거기에 가 있으면 엄마가 마음이 좀 편할 거 같아.”
   엄마의 부탁을 마지못해 들어주는 척했지만, 나는 고모 집에서 지내게 됐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다. 
   엄마는 고모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절대 고모를 힘들게 하지 말 것.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예전부터 고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모를 좋아했다. 이왕이면 고모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길 바랐다. 저 아이가 내 딸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젓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내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고모 집에 온 첫날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고모는 나를 위해 저녁상을 평소보다 푸짐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불고기와 잡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감자샐러드까지 차려져 있는 식탁을 보고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고모부도 내 덕에 호사를 누리게 됐다며 좋아했다.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나까지 세 사람이 식탁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초등학교 3학년인 지후는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라고 여러 번 불렀지만 나오지 않아 고모가 방에 들어가 직접 데리고 나왔다. 지후가 마지못해 따라 나와 내 옆자리에 앉았고,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지후는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계속 내 등을 툭툭 건드리며 장난을 치려고 들었다. 
   “지후야 장난 그만하고 밥 먹어야지.”
   고모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내 몸을 건드리는 그 아이의 행동이 무척 거슬렸지만 굳이 티를 내지 않은 채 묵묵히 밥을 먹었다. 지후는 내가 자신의 장난에 반응하지 않자 내 등 뒤로 손을 갖다 대더니 나를 갑자기 꼬집었다. 
   “히히, 누나 완전 돼지야. 등에 살 무지 많네.”
   지후가 꼬집은 곳은 브래지어 끈 바로 아래에 튀어나온 살 부위였다. 꼬집은 것도 불쾌했지만, 하필 그 부위에 손을 갖다 댄 것은 다분히 나쁜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화가 났다.  
   “야! 너 지금 어딜 꼬집은 거야?”
   나는 숟가락을 놓고 지후를 노려보았다.
   지후는 내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빙글거리며 웃었다.
   “지후야, 밥 먹다가 장난치면 못써. 우리 지후가 이수 누나 와서 엄청 좋은가 봐.”
   고모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낭랑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이건 보통 장난이 아니에요. 지금 지후가 어딜 꼬집은 줄 아세요?”
   내가 씩씩거리며 묻자 고모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수야 미안해, 고모가 대신 사과할게. 지후가 장난이 과했어.”
   고모는 여전히 생글거리며 말했고, 지후는 딴청을 피우며 갑자기 밥을 열심히 먹었다. 이건 고모가 대신 사과할 일이 아니라고, 정색을 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고모부가 흠 하고 헛기침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우리 엄마라면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 절대로 저런 식으로 얼버무리진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녁을 먹은 후 고모부와 지후는 동시에 일어나 거실로 갔다. 식탁을 치우는 일을 돕지 않는 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고모를 도왔다. 
   “아니야, 괜찮아. 나 혼자 해도 돼.”
   “저는 원래 집에서도 이렇게 해요. 설거지까지는 아니라도 먹은 접시 개수대에 넣어놓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나거든요.”
   “난 진짜 괜찮아. 우리 집에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단다. 그래도 도와줘서 고마워. 딸이 있으니 좋긴 하구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고모에게 실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모가 나를 딸로 둔 우리 엄마를 부러워하는 게 느껴져서, 그 순간 왠지 조금 뿌듯해졌다.
   그날 밤, 나는 욕실에서 세수와 양치질을 마치고 스타킹을 빨고 있었다. 고모 집에 오는 날이라 아끼는 원피스를 입고 스타킹도 챙겨 신고 왔던 터였다. 
   욕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 고모가 다가와 물었다. 
   “이수야, 여기서 뭐하니?” 
   “손빨래요, 스타킹을 빠는 중이에요.”
   “뭐라고? 지금 이 시간에? 네가 왜 이걸 직접 하는 거야?”
   고모가 기겁을 하면서 다시 물었다.
   “평소에도 제가 빨아요. 중학교에 입학한 뒤로 교복 스타킹과 팬티는 제 손으로 빨래하고 있는 걸요.”
   고모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말렸다.
   “세상에! 언니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참 독하네. 어서 그거 두고 들어가. 고모가 해줄게.”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어요.”
   “너는 들어가서 공부해. 아니면 그냥 발 뻗고 자든지. 어떻게 애한테 이런 일을 시켜?” 
   고모는 안절부절못하며 내게 어서 나오라고 손짓했다.  
   “너는 아직 너무 어리고, 이런 건 어른들에게 부탁해도 된단다.”
   고모는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나는 내 생각을 해주는 고모가 고마우면서도 불편했다.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여태까지 해온 일이었다. 절대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아이에게 시켰다고 말하는 건 왠지 우리 엄마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결국 손빨래를 내 방식대로 마쳤고, 스타킹을 꼭 짜서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은 후 자러 들어갔다. 
   “이수 너도 고집이 참 어지간하구나. 너희 엄마를 똑 닮았네.”
   고모가 내 뒤통수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칭찬처럼 들리지 않아서 대꾸하기 싫어졌다.
   방으로 들어와보니 엄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엄마는 내게 고모 집에서 첫날 어땠느냐고, 별일 없었는지 물었다. 나는 오늘 겪은 일을 시시콜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다 하지 못한 채 ‘고모는 잘해주셔. 그래도 빨리 우리 집에 가고 싶어’라고 답신을 보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