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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친구, 두 가지 우정

 

by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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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기 전, 김민지 작가의 『두 명의 친구, 두 가지 우정』을 읽었다.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라 여행을 그리 많이 해보지 못했다. 제대로 해 본 첫 여행이 신혼여행이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나는 그 여행의 기억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촌스럽다. 나는 지금도 시기리야에서 바라봤던 아득한 풍경을 생각하고 있다. 뭐라 말로 옮길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내가 겪은 그대로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곳을 다녀오며 느꼈던 것들을 표현해보고자 했다. 

​김상현

 

​시기리야

 

김상현   

   해발 370미터 시기리야 정상은 세찬 바람으로 가득했다. 절벽 계단을 오르느라 비 오듯 흘렸던 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요새 왕궁의 유적처럼. 영우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무너진 돌담 옆에 섰다. 몸을 펴면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야팅은 어디 있지? 영우는 주변을 살폈다. 그녀는 무릎 높이밖에 안 되는 낭떠러지 펜스에 붙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리넨 스카프가 바람에 풀려 이리저리 휘날렸다. 여기 좀 봐요! 야팅이 영우를 발견하곤 손짓했다.

   어, 위험해요.

   영우가 영어로 말했지만, 야팅은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나도 보고 있어요. 하하. 야팅이 절벽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영우가 야팅을 만난 곳은 콜롬보의 어느 카페였다. 영우는 온종일 시내를 걸었다. 땀에 절었고 다리가 아팠다. 관광객들이 카페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적한 곳을 찾아 다시 나갈까 했지만 다른 데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그냥 앉기로 했다. 영우는 식사 메뉴를 살펴보다가 라임주스만 주문했다. 뭐라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입맛이 없었다. 주스는 미지근했다. 천천히 마시고 있는데 사롱을 차려입은 한 젊은 여자가 영우에게 다가와 중국어로 말을 걸었다. 영우는 중국어를 못 한다고 영어로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휴대전화에 뭔가를 써서 영우에게 보여주었다.

 

   Chinese -> Japanese:

   私の席を守ってくれませんか.

   Watashi no seki o mamotte kuremasen ka.

 

   영우는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번역 사이트를 열어 ‘나는 일본어도 하지 못해요’라고 입력하고 중국어(간체)를 선택했다.

 

   그녀의 이름은 첸야팅. 대만 출신의 치위생사. 스리랑카에는 사흘 전에 도착. 중국어와 일본어를 거쳐 한국어로 도착한 그녀의 메시지는 자신의 짐을 봐달라는 것. 영우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주스를 비웠다. 돌아온 그녀는 짐 안에서 포장된 홍차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드는지 여러 번 찍었다. 영우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야팅은 휴대전화에 뭔가를 써서 보여줬다. 가족 선물. 마침 온 웨이터가 야팅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야팅은 다시 휴대전화에 뭔가를 써서 영우에게 보여주었다. 그 주스 어때요?

   영우는 야팅과 그렇게 대화를 나누게 됐다. 반쯤은 음성으로, 반쯤은 필담으로. 날씨와 도시와 해변에 대해, 그동안 다녀온 곳과 사람들에 대해. 주로 야팅이 말하고 영우는 들었다. 영우에겐 그다지 말할 것이 없었다. 스리랑카에서 그가 가본 곳이라곤 공항과 콜롬보 시내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 머물 계획인가요? 야팅이 물었다. 영우는 머뭇거렸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야팅은 말했다. 영우는 그런 건 아니라고, 아직 무얼 할지 정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계획이 없었다. 그래서 스리랑카로 오게 된 것이고, 마땅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좋은 곳이 있다면 추천해줘요. 영우가 말했다. 야팅은 잠시 생각하다 ‘시기리야’에 가볼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영우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시기리야가 뭔가요?

   야팅이 웃었다. 스리랑카 여행을 온 사람 중에 시기리야를 모르는 사람은 처음 봐요. 가보지 않아도 뭔지는 다 안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게 뭔가요?

   음…… 정글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바위산이에요.

   그게 다예요?

   오래된 유적이고요.

   야팅은 자신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휴대전화를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건 어때요? 함께 시기리야에 가는 거예요. 가서 직접 확인해보는 거죠. 내일 아침 8시, 여기 앞에서.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다음 날 아침, 영우는 일찍 눈을 떴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한국을 떠난 이후로 어렵게 잠들고 쉽게 눈을 떴다. 그는 천장에서 휙휙 돌아가는 실링 팬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시기리야는 스리랑카 섬의 북중부에 있었다. 콜롬보에서는 160킬로미터 거리. 차로 세 시간 남짓. 생각보다 먼 곳.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지? 영우는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을 했다.

   숙소 앞에 모여 있던 트리휠 기사들이 영우를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니하오. 니하오. 영우는 대답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며칠간의 경험을 통해 대꾸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걸 깨달았다. 몇몇이 영우의 뒤를 따라왔다. 스폐셜 프라이스, 스폐셜 프라이스 포 유.

   영우가 여전히 대답하지 않자 몇몇은 다른 관광객에게로 발길을 옮겼다. 트리휠 기사 한 명만이 그를 따라왔다.

   니하오, 오하이오, 안녕하세요. 영우가 멈칫하자 트리휠 기사는 영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미소 지었다. 한국 사람. 왜 그리 심각해. 웃어요 웃어. 어디 가요? 내가 데려다줄게.

   난 멀리 떠나요.

   어디 가는 데요?

   콜롬보 밖으로요.

   괜찮아요.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영우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시기리야.

   트리휠 기사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노 프로블럼. 택시 있어요. 우리 사촌 차. 토요타. 나이스 카. 베스트 드라이버.

   영우는 주저했다. 정말 그곳에 갈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트리휠 기사는 어딜 가나 가격은 마찬가지라고 말하면서 자기 사촌이 얼마나 운전을 잘하는지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 싱할라어로 말했다. 영우가 가려고 하자 그를 붙잡았다. 나이스 카, 베스트 드라이버, 스페셜 프라이스. 10분 있으면 올 거예요. 보고 결정해요.

   그는 쉬지 않고 영우에게 말을 걸었다. 말을 멈추면 영우가 가버릴 것이라고 생각한 듯이.

   ……한국사람 부자야. 내가 아는 모든 한국 사람은 다 가진 게 많아. 근데 다 돈 걱정해. 걱정 너무 많아. 오, 저기 온다.

 

   그의 이름 프랭크. 오래된, 그러나 깨끗하게 관리된 토요타 캠리를 몰고 온 사람. 룸미러에는 묵주와 십자가가 걸려 있다. 트리휠 기사는 그를 가리켜 베스트 드라이버, 라고 다시 말했다. 프랭크는 머리가 하얗게 셌고 이마엔 깊은 주름이 패여 있다. 아무리 봐도 트리휠 기사의 사촌치고는 나이가 많아 보였으나 영우는 별말 하지 않았다. 프랭크는 그의 사촌과 달리 입이 무거웠다. 그는 영우의 묵직한 가방을 넘겨받아 트렁크에 싣고는 운전석에 앉았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트리휠 기사는 영우에게 말했다.

   지금 나한테 1만 루피를 주고, 도착하면 프랭크에게 5천 루피를 주면 돼. 영우는 프랭크를 쳐다보았지만, 그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영우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으로 5시간 동안 운전할 사람은 저기에 있잖아. 왜 저 사람이 더 적게 받는 거지?

   영우의 말에 트리휠 기사는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 그건 정말 오해야.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프랭크는 나 때문에 좋은 일을 하게 된 거야. 내가 없었으면 프랭크는 돈을 벌지 못했을 거라고. 프랭크도 다 이해하고 있어. 그는 정말 운이 좋은 거야.

   트리휠 기사는 운전석에 다가가 다시 싱할라어로 뭔가를 얘기하며 그의 어깨를 툭툭 친다. 프랭크는 영우를 보며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그의 이름 오영우. 어느 대학 부설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 고고미술학과 관련된 예술 정책을 연구하고 심포지엄을 운영하는, 연구소 안에서는 선생님이라고 불리지만, 매년 사업 종료와 해고를 걱정하는 계약직 신분. 연구소장은 그의 논문 지도 교수였다. 영우가 쓴 글은 소장의 이름으로 발간되는 책의 일부가 되고, 그의 연구는 소장의 연구가 되고, 국고지원용역연구비는 그를 거쳐 소장의 ‘그린 피’가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영우는 예산 사업 설명 자료를 작성하다가 연구 사업이 올해로 종료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장은 해당 사업을 종료하고 대신 다른 사업 예산을 신청했다. 연구원 상용 임금 예산은 다섯 명 몫에서 두 명으로 줄어들었다. 대신에 연구용역비는 증액됐는데 그건 소장이 내키는 대로 주무르는 돈이었다. 영우는 아찔하고 어지러웠다. 땅이 물컹거리며 밑으로 꺼져버린 것 같았다.

   소장에게 보내는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지웠다가. 결국 영우는 문자를 보내지 못했다. 대신 다른 연구원들에게 단체 메일을 보냈다. 연구 종료와 임금 예산 삭감, 소장이 시작하려는 다른 사업에 대해. 연구원 중 한 명이 영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진심으로 실망했다고, 소장이 그럴 줄은 정말로 몰랐다고, 너무나도 슬프고 너무나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그중에서 영우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지금까지 참았지만 이젠 아니라고, 영우가 결심을 내리면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영우는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소장은 처음엔 무슨 소리냐고 잡아떼다가 이내 영우야, 뭔가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일단 나를 좀 믿어. 응? 일단 너는 나랑 함께 가는 거고, 나도 다 사정이 있으니까 그런 거라고. 응? 내가 나 하나 잘되자고 그러는 거 아니잖아. 자리 잡고 빨리 궤도에 올려야 연구원들도 더 좋은 대우받고 일하게 되는 거라고. 학교에서 나도 힘들어. 너는 알아야지. 응? 누구보다도 영우 너는 잘 알잖아.

   인정하기 싫었지만 소장과 통화를 한 후 영우는 다시 땅에 발을 디딘 듯했다. 일단 너는 나랑 함께 간다는 그 말 때문에.

   그해 11월 말, 한 해를 한 달 남겨둔 시기, 계약 종료를 위한 법적 시기의 끝, 영우는 학교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소장에게 만나자는 문자가 왔다. 룸을 잡고, 양주를 놓고, 술을 가득 따르고, 소장은 영우에게 미안하고 고생 많았다고 말했다. 취기가 올랐다. 빈 병이 늘어날 때 영우와 통화했던, 영우와 함께하겠다던 연구원이 왔다. 그는 소장 옆에 앉았다. 소장이 말했다, 영우야, 통장은 얘한테 주면 된다. 알겠지?

 

   영우는 시계를 본다. 오전 8시 30분이다. 프랭크에게 잠시 들를 데가 있다고 했다. 프랭크는 영우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콜롬보 시내의 카페, 전날 야팅과 만난 곳. 야팅은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등에 메고 있었다. 그녀는 영우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었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과 팔.

   안 올 줄 알았어요. 이제 막 가려던 참인데. 차에 탄 야팅이 영우에게 말했다. 영우는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야팅은 괜찮다고 말했다. 이렇게 좋은 차를 타고 가게 됐으니 나쁠 게 전혀 없다고도 했다. 야팅은 자기도 차비를 내겠다고 말했다. 영우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야팅은 고집한다. 그래야 자기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프랭크가 운전하는 토요타는 시내를 빠져나가 어느새 좁고 한적한 길로 들어섰다. 좁은 도로를 따라 우거진 숲과 초원과 강과 작은 상점과 가게, 그리고 집이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진다. 프랭크는 이따금 싱할라어와 영어를 반쯤 섞어 영우와 야팅에게 말을 건다. 같은 단어를 몇 번씩 반복하는 걸 보니, 아마도 그들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들이 지금 어디쯤인지 알 길이 없다. 영우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귀가 길쭉한 개들이 길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학교 가는 아이들, 그 사이를 비집고 자전거와 오토바이 들이 지나간다. 엔진 배기음과 아이들의 대화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부산스럽고 또 한편으로 평화로운 일상이 천천히 흘러갔다.

   야팅은 자신의 남은 여행 계획에 대해 영우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도 많지만 시간이 없는 게 아쉽다고도 했다. 시기리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캔디라는 도시가 있다. 거기에는 부처의 치아 사리를 모신 불치사라는 절이 있다. 담불라에는 어느 유명한 스리랑카 건축가가 정글 한복판에 지은 멋진 호텔이 있다. 누와라엘리야라는 산악 지대에는 세상의 끝이라는 2천 미터가 넘는 절벽이 있다. 영우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까무룩 잠이 든다.

 

   프랭크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시기리야가 멀리 푸른 하늘 아래 우뚝 서 있었다. 야팅은 카메라를 꺼냈다. 꼭 팬케이크 쌓아놓은 것 같지 않아요? 야팅이 웃으며 말했다.

   야팅은 프랭크에게 시기리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영우가 뒤로 물러서려고 하지만 팔을 붙잡아 끈다. 영우와 사진을 찍은 다음 그녀는 프랭크에게도 같이 사진을 찍자고 말한다. 프랭크가 고개를 가로젓지만 야팅은 포기하지 않는다. 야팅은 지나가는 백인 관광객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셋은 함께 사진을 찍는다.

 

   프랭크는 담배를 꺼내고 야팅과 영우에게 권했다. 야팅이 사양하자 주머니 이곳저곳을 뒤져 사탕을 꺼냈다. 그들은 차에 기대 사탕을 나누어 먹었다. 프랭크가 천천히 말했다. 그는 신중하게 할 말을 찾았다. 싱할라어와 영어가 뒤섞이며 충돌하지만, 영우와 야팅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희가 입장료를 치르고 시기리야를 향해 걸어갈 때 사람들이 말을 걸 거야. 자기가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 어떻게 자격이 있는 사람을 구분하느냐고? 음 내 생각에는 구분할 필요가 없어. 그냥 대꾸하지 말고 사자 바위를 향해 걸어가. 너희는 그저 바위를 올라가면 되는 거야. 내가 생각하기엔 시기리야를 다녀오는 데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가 없거든.

   근데 프랭크 이미 네가 우리를 도와준 거잖아. 야팅이 말한다. 프랭크는 그저 웃는다.

 

   야팅의 리넨 스카프가 결국 바람에 날아간다. 그녀가 팔을 뻗어보지만 닿지 않는다.    영우는 그녀의 다른 쪽 팔을 붙잡는다. 스카프는 펄럭거리며 공중으로 솟구치다가 또 다른 바람에 휩쓸려 아래로 떨어진다. 곧 보이지 않는다. 야팅의 카메라는 날아가는 스카프를 향해 점점 아래로 향한다.

   영우는 야팅의 옆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숲 사이로 그들이 걸어왔던 시기리야 정원 입구가 보였다. 아득히 먼 곳 같았다. 저 밑에선 이렇게 높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영우가 말했다. 시기리야만 내버려둔 채 모든 게 저 아래로 물러나 있는 것 같았다. 나무와 습지와 초원과 저수지가 빛과 그림자와 고요히 저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야팅은 눈으로 보는 것만큼의 풍경이 사진엔 담기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다시 가방에 넣고 무너진 성터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먼 곳을 바라보았다.

   영우는 야팅에게 어디로 갈지 정했는지 물어본다. 야팅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야팅에게 동행을 제안할까 생각해보았지만, 이젠 헤어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우는 이제 자신의 여행을 찾아야 했다.

   이곳을 만든 사람들도 한 번쯤은 우리와 같은 걸 보았겠죠? 야팅이 벽돌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한국에 가면 뭘 할 거예요?

   야팅이 물었다.

   영우는 야팅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할 일이 이제 막 생각났어요.

   영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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