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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다 준다 해도,

쇼핑은 계속될 거야!

 

by 이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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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호 작가의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쇼핑은 계속될 거야!』는 내게 정말 놀라운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제목에 끌려 읽게 되었는데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에 반하고, 재미있는 내용에 손을 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책을 모두 덮은 후에는 서글픈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판다가 긍정과 유머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그 묘기 같은 생활을 견뎌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쇼핑을 하며 자신을 꾸미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판다의 모습이 나와 닮아 보이기도 했다. 덕분에 다분히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읽으면서, 그리고 쓰면서 치유를 받았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이진하

 

​미싱

 

이진하   

   바늘을 잃어버렸다. 그건 작은 일이 아니었다. 집에는 막 기어가기 시작한 아기가 있다. 현이는 온몸으로 바닥을 쓸고 뭐든 입으로 가져간다. 나는 현이를 점보 의자에 앉혀두고 바닥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바늘은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다. 남편이 먼저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남편은 내가 미싱을 시작한 이후로 현이가 부쩍 밤에 자주 운다고 생각했다. 이앓이 때문에 자주 깨는 거라고 설명했지만 내 말을 믿지는 않는 눈치였다. 서운했다. 산후우울증에 좋다며 취미 생활을 시작하라고 부추긴 것도, 매장에 가서 내 생각에는 조금 과하다 싶은 가격의 미싱을 선뜻 구매한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처음에는 모든 것이 다 괜찮았는데.

어쩌면 그 집에 갔을 때부터인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토요일 아침이었고 우리는 아침부터 부산했다. 집에서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를 아기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전부 잘 챙겼어? 빼먹은 거 없어?”

   남편은 물었고, 나는 가방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다시 확인하고 차에 올라탔다. 우리는 원단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파우치나 가방 같은 소품 말고 옷을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한 시기에, 마침 인터넷에 누군가 올린 글을 읽었다. 취미 생활을 그만두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원단과 부자재를 헐값에 전부 처분한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많길래 각오까지 해야 해?”

   앞에서 운전하던 남편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는 카 시트에 앉은 현이의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여름 원단부터 겨울 원단까지 다양하게 있대. 너무 많아서 사진도 다 못 찍었대. 그거면 한동안 뭐 새로 살 일은 없을 거라던데? 마네킹도 가져가라는데 거절했어.”

   “그걸 다 어디에 두려고?”

   “서재에 두면 되지. 현이가 태어나고 나서 당신도 나도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잖아.”

   나는 구매할 원단으로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옷의 종류를 늘어놓았다. 점퍼, 원피스, 맨투맨 티셔츠, 수영복, 심지어 현이의 돌 한복까지…… 남편은 이제 옷 안 사도 되는 거냐며 너스레를 떨었고, 현이는 카 시트에 얌전히 앉아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다가 잠이 들었다.

 

   약속한 장소는 판매자의 집 앞이었다. 조금은 낡은 저층 아파트였다. 202동 앞에 차를 주차하고 판매자를 기다리는데 현이가 깨어났다. 나는 울고 있는 현이를 달래며 분유병을 흔들었다. 그때였다.

   “설마 저건 아니지?”

   남편이 물었다. 어떤 부부가 커다란 수레를 앞뒤로 끌고 아파트 입구에서 나오고 있었다. 수레에는 높이가 1미터씩은 되는 꽉 채워진 파란 봉투가 겹겹이 쌓여 있었다. 어림잡아도 열 개는 훨씬 더 넘어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대신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현이에게 분유를 먹이는 동안 두 남편은 트렁크에 봉투를 하나하나 옮겨 넣었다. 나는 차 뒤편 유리로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힘든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차 문이 열렸다. 불쑥 커다란 봉투 하나가 들어왔다.

   “트렁크가 꽉 차서요.”

   판매자의 남편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나는 가운데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남자는 이런저런 각도로 봉투를 넣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예 나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나는 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남편은 이제 손을 놓은 채 다른 사람이 우리 차 뒷좌석에 물건들을 쑤셔넣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돈은 계좌 이체해주세요.”

   옆에 팔짱 끼고 서 있던 판매자는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휴대폰으로 계좌 이체를 하는 동안 남편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나는 현이를 안은 채 부산히 조수석에 올라탔다.

   “위험하잖아. 카 시트에 앉혀야지.”

   “자리가 없는데 어떡해. 차가 너무 작잖아.”

   남편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현이는 자세가 불편한지 가는 길 내내 징징거렸다.

   “쪽쪽이라도 좀 물려봐. 신경 쓰여서 운전을 못 하겠어.”

   남편은 말했다. 그제야 나는 공갈 젖꼭지를 챙기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걸 두고 다니면 어떡해? 내가 몇 번이나 물어봤잖아.”

   “다 챙긴 줄 알았지. 당신은 가방 한 번 챙겨본 적 없으면서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우리는 한동안 ‘쪽쪽이’를 챙기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바람에 싸움은 싱겁게 끝나버렸지만.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나는 앞을 보며 말했고, 남편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될 거라는 판매자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다. 원단을 꺼내 작업을 시작해보려고 할 때마다 필요한 것이 생겼다. 곡선자와 암홀자, 시접자, 패턴지는 물론이고 단추, 바이어스 메이커, 고무줄, 라벨, 원단을 빳빳하게 만들어주는 심지, 콘솔 지퍼 등이 필요했다. 원단이 많은 만큼 그 원단에 필요한 실과 시보리 또한 다양했다. 내가 사야 하는 물건 대부분은 크기와 색깔별로 여러 개가 필요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꼭 필요한 재료들을 선별한 후 한 권의 패턴 책과 다섯 개의 패턴도안을 구매했다. 질리지 않고 변형이 쉬운 기본 디자인으로 추리고 추리느라 며칠을 고민한 것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택배가 왔는지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중국에서 주문한 물건들은 저렴했지만 위치 추적이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기다리는 택배가 오기 전까지 나는 원단을 세탁하고 정리하고 재단해두기로 했다.

   “서낭당도 아니고 이게 뭐야?”

   세탁한 원단들을 집 안 곳곳에 널어둔 것을 보고 남편이 말했다. 나는 선세탁을 하지 않으면 옷이 완성된 후 수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남편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남편은 재단된 원단 조각들을 보며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재봉은 도대체 언제 해?”

   “재봉틀 소리에 깰까 봐 지금은 재단 먼저 하고 있어. 밤에는 현이가 잠을 자잖아.”

   “낮에는 안 자니까 못 한다면서.”

   남편이 말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남편은 계속 투덜거렸다. 어질러진 천들도 마음에 안 들고 먼지들도 마음에 안 들고 아기 입가에 실이 붙어 있는 것도, 기저귀 안에서 천 조각이 나오는 것도 싫다고 했다.

   “지금 주문한 재료만 오면 시작할 수 있어. 바이어스 랍빠랑 초크 펜이랑……”

   “이제 그만 좀 사고 집에 있는 것으로 대충 시작해.”

   남편은 내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나는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멋진 완성품은 ‘있는 것으로 대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다. 무작정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빨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한참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이를 가질 때도 우리는 이런 문제로 싸웠다. 나는 아기를 갖기로 결심하기 전에 최소한 열 권의 육아 서적을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는 모든 것이 이론대로 되지만은 않는다며 일단 낳고 기르면서 배워가자고 했다. 나는 그가 주제넘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떨어진 단추도 제 손으로 못 다는 주제에 뭘 안다고 그래?”

   그는 택배 상자를 발로 찼다.

   “그렇게 무시하는 말투 좀 쓰지 마!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집 안 꼴 좀 봐! 아기 물건 놓을 자리도 없어. 당신 정신이 있는 거야? 아기 엄마 맞아?”

   “아기 얘기가 왜 나와? 나는 취미 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야.”

   “내가 봤을 때 당신의 취미는 재봉이 아니야. 쇼핑이지. 지난 세 달 동안 나는 당신이 미싱을 돌리는 것을 한 번도 못 봤어!”

   “아기 때문에 바쁜 걸 나더러 어쩌라고? 그럼 이 고가의 미싱을 사놓고 손 놓고 있으란 말이야? 짐이 많은 건, 집이 좁아서야! 그리고 지금은 중국에서 물건을 사서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해. 나중에 오버록 미싱도 사려면 우리 형편에는 돈을 많이 아껴야 한단 말이야.”

   남편은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힘없이 말했다.

   “미싱이 또 필요하다는 거야, 지금? 여보, 제발 그만 좀 사……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어.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포기라니.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우스웠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뭘 그렇게 포기했는데?”

   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그것이 마치 내 탓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노려보고 서재를 나갔다. 현이의 울음소리는 곧 잠잠해졌다.

 

   그날따라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나는 간만에 재봉틀을 켰다. 누빔 원단에 4온스 솜을 넣어 빳빳하고 폭신한 파우치를 만들려 했다. 원단을 무리하게 겹쳐 박은 탓일까? 재봉 소리가 이상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시끄럽게 들렸다. 천천히 발판을 밟았는데도 자꾸만 바늘땀이 엉켰다. 북집에 실이 뭉쳐진 채 낀 것 같았다. 나는 발판을 더 살살 밟았다. 손바느질만도 못한 속도로. 그러다가 억울해졌다. 왜 나는 시끄러우면 안 돼? 나는 발끝에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그게 만약 자동차 액셀이었다면 시속 160킬로미터는 족히 찍었을 거였다. 기관총 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미싱이 돌아갔다. 바늘땀은 삐뚤빼뚤했고 장력도 맞지 않았다. 그러다 뚝 소리를 내며 기계가 멈췄다. 바늘이 부러진 것이다. 부러진 바늘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기계가 멈추자 그제야 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닥을 손으로 더듬다가 현이 방으로 달려갔다. 현이는 30분 동안 서럽게 울었다.

   현이를 겨우 재우고 밖으로 나왔을 때, 소파 위에서 남편은 여전히 코를 골고 있었다. 나는 어슴푸레한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거실에는 아기 장난감들이 어지러웠고 남편이 벗어둔 옷이 허물처럼 놓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옷장은 열려 있었고, 빨래 통은 넘쳐나고, 싱크대에는 젖병이 쓰러져 있고, 서재에는 실 뭉치, 원단 조각, 자리가 없어 구석으로 밀려난, 이제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내 전공 서적들……

   언젠가 남편은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날 자신이 다른 가정의 불행을 양도받은 기분이었다고. 몇 번이나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며 원단을 집으로 실어 나르던 그날 이후, 서재 곳곳에 자리 잡은 묵은 그 원단들이 자신을 내내 짓누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남편은 소파에 웅크려 누우며 중얼거렸다.

   “너무 무거워. 인생이.”

   미싱을 하다 보면 분명히 두 장의 천을 잘 고정한 것 같은데 모서리가 틀어진 채 끝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틀어진 것일까? 박는 건 쉬워도 뜯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왜 아무도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까?

 

   다음 날 저녁 남편은 꽃을 사 왔다. 남편이 꽃을 사 오는 것은 사과할 때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남편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갑자기 날개뼈 근처가 따끔거렸다. 나는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만져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남편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미싱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했지?”

   그날 밤 잠든 현이 옆에 누워 나는 휴대폰으로 미싱을 골랐다. 오버록 미싱에 필요한 날라리사도 색깔별로 담았다. 나는 결제를 눌렀다. 장바구니가 비워진 순간 얹힌 것이 내려가듯 시원해졌다. 나는 천장을 보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틀 뒤면 오버록 미싱이 올 것이다. 한 달 뒤에는 중국에서 산 티 단추 기구가 오겠지. 내년에는 어쩌면 둘째가 태어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현이는 걷고 뛰기도 할 것이다. 재단해둔 옷들이 맞지 않을 만큼 커버리면 어쩌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어둠 속에서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잠든 현이가 보였다. 나는 현이의 둥글고 따끈한 볼을 가만히 쓰다듬어보았다. 무언가 잃어버린 것만 같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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