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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천국
이진하
눈을 떠보니 천국이었다.
“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떤 아줌마가 이렇게 말하며 팔을 벌렸다. 그녀는 자신이 대천사장이라고 했다. 대천사가 한국인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한국 지부 대천사.”
그녀가 그렇게 덧붙이며 방긋 웃었다. 아하, 나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 하지만 더 궁금한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도대체 왜 내가 천국에 온 것일까? 나는 천국의 개념이 있는 그 어느 종교도 가진 적이 없었고, 심지어 그리 착하게 살지도 않았다.
“아, 기종명 님은 아슬아슬한 점수로 천국에 들어오셨어요.”
대천사 아줌마는 명부 같은 것을 들춰보며 대답했다.
“점수라고요?”
대천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죠. 그럼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게 뭘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사람의 선행과 악행에는 모두 점수가 붙어요. 가산점도 있고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는 사람이라면 0점이겠죠. 마이너스면 지옥, 플러스면 천국입니다. 보통 정확히 0점이 나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요. 하지만 기종명 씨는 기묘하게도 딱 0점이더란 말이지요. 이 사실을 두고 한국 지부 지옥간부장과 이야기를 좀 나눠봤는데요, 서른세 살의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일찍 죽은 게 안타까워서 1점을 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천국에 있는 겁니다.”
“제가 불의의 사고로 일찍 죽었다고요?”
“그럼요. 산에서 발을 헛디뎌 실족사했잖아요. 기종명 씨 원래 수명이 78세더라고요? 뭔가 명부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제야 죽기 전, 소리를 지르며 높은 곳에서 떨어지던 기억이 났다.
“너무 안타까워할 건 없어요. 오래 살아서 뭐 해. 다들 오고 싶어 하는 천국에 이렇게 왔는데. 선행 실적을 보니까 그대로 살았으면 지옥행이에요, 기종명 씨. 억울해하지 말고 감사히 지내시라고요.”
대천사는 내게 천사들이 입는 새하얀 옷을 주었다.
“자, 그럼 지내실 곳을 안내하죠.”
나는 대천사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물었다.
“그런데 대천사님은 그, 바쁘시지 않나요?”
“무슨 뜻이죠?”
“그러니까, 이렇게 신입을 안내하는 일 같은 거 높으신 분이 직접 하니까 신기해서요.”
대천사는 깔깔 웃었다.
“이것 말고는 딱히 일이랄 게 별로 없어요. 다들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게 지내는데 뭐가 문제겠어요. 가끔 규율을 어기는 사람들을 벌주거나 내쫓긴 하지만요.”
나는 그제야 대천사의 허리춤에 작은 칼 같은 것이 있는 것을 보았다.
“내쫓는다면…… 지옥으로요?”
대천사는 전보다 더 크게 웃었다.
“악마들은 뭐 할 일이 없게요? 자기네 죄수들 관리하는 것만도 바쁜데 천국에서 넘겨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것 같냐고요. 아! 도착했네요.”
대천사는 새하얀 건물의 가장 아래층에 있는 방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방은 흰색이었고 가구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럼, 천국에서의 첫날을 축하합니다.”
대천사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나는 옷을 갈아입으며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실족사를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자살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공인중개사 1차 시험에 낙방한 날 홧김에 죽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1차는 그냥 1차가 아니었다. 5년째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한 후, 도저히 안 되겠다 해서 선택한 공인중개사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균 60점이면 통과인데 59점! 딱 1점 때문에 1년을 또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지긋지긋했다. 2차 시험까지 따지면 자그마치 2년을 더 공부해야 하는 셈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죽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에서는 공인중개사는커녕 그 잘난 변호사나 회계사도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대천사장 님도 그러하실진대 말이다. 나는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천국에 입성한 것은 내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 내가 입만 다문다면 그 행복은 얼마든지 이어질 것이었다.
나는 천국을 좀 구경하려고 방을 나섰다. 길거리에는 내 또래가 있기는 했지만 노인들이 더 많았다. 죽은 사람들은 과연 천국에 어울리는 짓들만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함께 요리했고, 그걸 함께 먹었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함께 게임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 내 눈앞에 ‘안내 센터’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저기, 지인을 찾는데요.”
카운터에 앉아 있는 남자는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은 연도와 이름, 사망 지역을 말씀해주세요.”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름을 댔다. 살아 계실 때 나를 무척 아끼셨던 할아버지.
“그분은 지금 지옥에 계십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지옥에 가다니.
“지옥에서는 잘 지내시겠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요.”
남자는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 말고는 딱히 보고 싶은 죽은 사람이 없었다. 할머니도 아직 살아계시고…… 나는 내 편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죽은 사람이 많지 않았고, 돌아가신 먼 친척들은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때 내 눈앞에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갔다. 머릿속에 해피가 떠올랐다. 내가 어렸을 때 키우던, 귀여운 강아지 해피! 천국에 가면 강아지들이 주인을 마중 나온다고 했는데 해피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개도 검색할 수 있나요?”
“물론이죠. 견종과 사망 추정 나이, 사망 시각, 장소, 사인을 말씀해주세요.”
나는 그렇게 해피를 만났다. 해피는 분수대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다른 개들과 함께 말이다. “해피야!” 내가 해피를 부르자 해피는 꼬리를 치며 내게 달려왔다. 해피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 코를 오래 핥았다. 나는 눈물이 났다. “해피야, 우리 이곳에서 오래오래 함께 살자.” 나는 해피를 끌어안고 말했다. 하지만 해피는 더 이상 나만의 해피가 아니었다. 해피는 개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나 말고 다른 사람들 모두의 코를 핥았다. 모두가 해피에게 친절했고 해피는 매우 해피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내가 더 이상 해피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슬펐다. 다들 어떻게 이런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그날 이후 나는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도 않았고, 실수로 내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발설할까 두렵기도 했기 때문이다. 대천사는 스토커처럼 나를 찾아와서 자꾸 이런저런 모임에 가입해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괴롭혔다. 내가 계속 거절하자 하루는 내가 아직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며 ‘실족사한 천사들의 모임’에 가입하라고 권유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곳만큼은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다. 실족사의 전문가들 앞에서 말실수했다가 비밀이 탄로 나 추방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식음을 전폐했다. 하지만 열받게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천국에서는 죽기는커녕 시름시름 앓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새하얀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냈다. 먹거나 자거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나는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자그마치 1년을 말이다! 그리고 1년째 되는 날, 나는 대천사를 찾아갔다.
“저는 사실 자살한 사람입니다. 천국에 있을 자격이 없어요. 이렇게 평생 죽지도 않고 사느니 차라리 벌을 받겠습니다. 저를 추방하세요.”
“사후 세계 시스템은 아주 정확합니다.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대천사는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갈 길을 가려 했다. 나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말했다.
“오해가 아닙니다. 저는 분명 자살을 한 거예요. 실족사가 아니고요. 못 믿겠으면 CCTV 돌려 보세요.”
“1점입니다. 종명 씨.”
대천사가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이 천국에 들어온 것은 고작 1점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겨우 그 1점 때문에 지옥에 간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이 종명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요? 왜 남들은 못 가져 안달인 이 자리를 버리지 못해서 난리냐고요.”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여기에 있으면 안 돼요!”
그러자 대천사는 엄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기종명 씨? 오류를 보고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아십니까?”
나는 멍하니 대천사의 얼굴을 쳐다봤다.
“기종명 씨를 추방하는 일쯤이야 쉽고 간단하죠. 여기 있는 이 대천사의 검으로 목을 베면 끝이니까요. 그런데 오류 보고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아요. 일 키우지 말고, 피차 좋게 좋게 지내자고요. 제 말뜻 아시겠죠? 머리를 좀 쓰세요. 이 1점짜리야.”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멀어져가는 대천사의 뒷모습만 가만히 보고 있었다. 대학 가면, 입사하면, 결혼하면, 애 낳으면, 집 사면 행복해질 거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그건 다 거짓말이었던 거다. 가만히 있으면 주어지는 행복 같은 건 천국에서도 없었다. 나는 대천사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내 목을 단번에 그었다.
“엿 먹어라, 대천사 개새끼야!”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당연히 나는 천국도, 지옥도 아닌 곳으로 추방당했다. 그곳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궁금하면 와보시든지.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처럼 추방당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